1920년 조선어 민간신문 창간의 배경과 과정
초록
일제는 3·1운동의 여파로 어쩔 수 없이 문화정치를 실시하며 언론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했다. 총독부는 조선인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920년에 민간신문 발행을 허가하고, 그런 신문을 통해 민심을 파악하거나 여론을 조작하려고 했다. 총독부는 분열과 경쟁을 유발하기에 적절한 신문의 수까지 따져보고 전체적인 구도를 짜서 신문발행을 허가했다. 다양한 조선인 집단이나 개인들은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의도 등을 갖고 신문발행 허가를 신청했다. 총독부는 적극적 협력세력 중에 2개, 소극적 저항세력 중에 1개의 신문발행을 허가했다. 협력세력 중에는 동화주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펼쳤던 국민협회에게 <시사신문>을 허가했고, 내선융화를 표방하며 사교활동을 했던 대정친목회에게 <조선일보>를 허가했다. 저항세력 중에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타협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인 세력에게 <동아일보>의 발행을 허가했다. 당시 잡지의 필자들은 국민협회 기관지 <시사신문>과 대정친목회 운영 시절의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판적이었다. 다만 창간 다시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비교적 민족주의적이었다는 평가와 다른 두 신문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Abstract
In the aftermath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the Japanese Imperialist was forced to implement ‘cultural politics’, allowing some freedom of speech. In order to assuage the Korean people's discontent, the Governor-General of Korea approved the publication of newspapers in 1920 and tried to grasp public sentiment or manipulate public opinion. The Governor-General gave permission to publish newspapers by forming the overall structure, even considering the right number of newspapers to cause division and competition. Various groups and individuals of Koreans applied for permission to publish newspapers with political or economic intentions. The Governor-General approved the publication of two of the active collaborators and one of the passive resistance forces. The authors of the magazine were consistently critical of Shisa-Shinmoon and Chosun-Ilbo. However, there was mixed opinion that Dong-A Ilbo was relatively nationalistic or that Dong-A Ilbo wa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other two newspapers at the time of the foundation.
Keywords:
the foundation of Korean private newspaper, cultural politics, Dong-a Ilbo, Shisa-Sinmoon, Chosun Ilbo키워드:
조선어 민간신문의 창간, 문화정치, <동아일보>, <시사신문>, <조선일보>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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